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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무릎 꿇은 유골 40여구에 감긴 ‘삐삐선’···72년 만에 드러난 ‘이념갈등’ 비극

1950년 9월에서 이듬해 1월 사이 발생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유해가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에서 발견되었다. 유해는 40여구였고, 유골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건장한 남성의 것이었다. 이번 발굴은 국가 차원의 첫 발굴이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은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민간인 치안대가 “인민군 점령기 시절 북을 위해 일했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해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부역자’로 낙인찍은 이들과 그 가족을 적법한 절차 없이 처형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대대적인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

1950년 대한민국 전쟁 당시 아산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40여구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민간인 치안대가 "인민군 점령기 시절 북을 위해 일했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해 시신을 유기한 사건으로, 가해자들은 '부역자'로 낙인찍은 이들과 그 가족을 적법한 절차 없이 처형했습니다. 이번 발굴은 이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발굴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국가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과거의 인권 침해 사건을 파악하고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사죄하며, 재발 방지와 전통문화보존을 위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금의 자유는 어떻게 얻어낸 것일까

1950년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실시되는 지금과 같은 여론조사를 하면 70%정도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였다. 모두 가진것이 없으니 평등을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25사변은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한 김일성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발했다. 우리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지 않았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북한과 같은 사회가 됐을 것이다. 윤정부가 말하고 있는 자유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이 만든 자유일 것이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이념적 분란을 일르키는 좌파와 언론은 반드시 문제의 책임을 감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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